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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 그냥 한 번 걸어봤다.

버스 안에서 일흔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휴대전화를 매만지며 '휴~'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창밖 풍경과 전화기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10분 쯤 지났을까, 어르신은 조심스레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우연히 통화 내용을 엿들었는데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거는 듯 했다. "아비다. 잘 지내? 한번 걸어봤다...." 대개 부모는, 특히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 번 걸었다"는 인사말로 전화 통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통화 버튼을 눌러보는 것일까. 심심해서? 그럴리 없다.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이..

언어의 온도 - 말의 무덤, 언총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 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 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사앧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 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이른바 다언증多言症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군에 있는 언총言塚이라는 '말 무덤'을 떠올리곤 한다. 달리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을 파묻는 고분이다. 언총은 한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마을이 흉흉한 일이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

언어의 온도 - 틈 그리고 튼튼함

대학 때 농활(농촌 봉사활동)을 갔다가 작은 사찰에 들어간 적이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 석탑 하나가 기품을 뽐내며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난 탑 주변을 빙빙 돌며, 돌에 새겨진 사엋와 흔적을 살폈다. 얼핏 봐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석탑이었다. 세월과 비바람을 견딘 흔적이 역력했다.'몇 살쯤 됐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조용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찰나,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얼마나 됐을 것 같나?" 주지 스님인 듯 했다. 그는 하루에도 서너 번식 마주치는 옆집 아이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듯 편안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있는 석물石物은 수백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야. 참,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 해." "네? 틈이라고 하셨나요?" "..

언어의 온도 -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이 있다. 좌우, 그러니까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잘 헤아리면 근원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일상의 모든 것이 공부의 원천이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얼마 전 5호선 공덕역에서 생각지도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소한 장면 하나가 내 마음에 훅 하고 들어왔다. 퇴근 시간, 콩나물시루 같은 전동차에 가까스로 몸을 밀어 넣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빈자리가 없었다. 승객들을 둘러봤다. 절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전화를 걸거나 동승한 사람과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경로석에 앉은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할머니 옆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법 시끄러웠다. 게다가 어르신은 뉴스 ..

언어의 온도 -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어머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젠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른다. 시간은 특히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부모 얼굴에 깊은 주름을 보태고 부모의 머리카락에 흰 눈을 뿌리는 주범은 세월이다. 병원에 들를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공간에선 언어가 꽤 밀도 있게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말기 암 환자가 들봄을 받는 호스피스 병동에선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고 작..

언어의 온도 - 더 아픈 사람

언어의 온도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몹쓸 버릇이 발동한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곤 한다. 그들이 무심코 교환하는 말 한마디, 끄적이는 문장 한 줄에 절절한 사연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꽤 의미 있는 대화가 귓속으로 스며들 때면, 어로漁擄에 나갔다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러 ㅁ괜스레 마음이 들뜨곤 한다. 일상이라는 바다에서 귀한 물고기를 건져 올린 기분이 든다.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 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아직 열이 있네..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고통과 탐색의 시간 - 나, 우리 가족 그리고 한인 공동체 (6)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들이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 음악과 병행하여 나는 집 근처 발레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발레레슨을 받았다. 발레리나 동생을 둔 어머니는 발레가 어린아이의 자세와 우아한 몸짓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발레학원 원장이자 강사인 부부는 뉴욕시티발레단이 운영하는 공식 발레학교인 아메리칸발레학교 출신의 무용수들이었다. 어느 날 나는 부모님과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시티발레단의 을 보러 가싿. 도심으로 이어지는 교통이 혼잡했던 데다가 비싸지 않은 주차장을 찾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15분 늦게야 공연장에 도착햇다. 한 번 음악이 시작되면 그 곡이 끝나고 새 곡이 시작되기 전에만 공연장 입장이 허락되기 때문에 ..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피아노와 바이올린, 춤을 배우다. (5)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실제로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낭송할 수 있게 됐다.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부모님이 집으로 초대한 손님들을 대접할 수도 있었고, 아이들을 모아 연극을 꾸며 여흥거리를 제공할 수도 잇었다. 동생은 파스텔화와 유화를 여러 점 선 보였는데, 어린아이의 작품치고는 정말 대단한 수준의그림이었다. 내 어린 마음 속에 존재하는 퀸즈의 응접실에서, 나와 동생은 제인 오스틴의 세계에 나오는 교양있고 우아한 숙녀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상류층 여주인공인 양 공상하는 것보다 더 희한한 일이 퀸즈의 아파트에서 벌어졌다. 내가 공연이라는 것에 흠뻑 빠져버린 것이다. 그 순간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부모님이 초대한 손님 앞에서 C.P.E 바흐(요한 세바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