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 말의 무덤, 언총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 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 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사앧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 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이른바 다언증多言症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군에 있는 언총言塚이라는 '말 무덤'을 떠올리곤 한다. 달리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을 파묻는 고분이다.


언총은 한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마을이 흉흉한 일이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에 파묻었ㄷ. 말 장례를 치르는 셈인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ㅇ니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에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없는지도 모른ㄷ나.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總量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스멩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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