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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책읽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4)

'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 소설과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은 바뀌었다.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첫 번째 소설로 기억된다. 어느 추운 섣달그믐 밤의 거리, 가난한 맨발의 소녀가 허기를 참으며 성냥을 팔지만 사람들은 휙 지나쳐 갈 뿐이다. 약간의 온기를 위해서 추위에 곱은 손으로 성냥을 하나씩 하나씩 켜는 소녀는 성냥 불빛 안에서 따쓰함과 사랑이 넘치는 광경을 본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만찬, 연말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가족, 하늘 위로 흐르는 유성을 본 소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유성은 누군가가가 죽어서 천국으로 갔다는 뜻이란다." 소녀는 다시 성냥불빛에 몸을 녹이며 ..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잊을 수 없는 슈타이너 선생님 (3)

나는 학교에서 매우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이제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고 필요하면 소통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아직도 두려움과 고립의 장소였다. 나와 학교 사이에 놓인틈은 더 이상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넘어서기 힘든 것이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고 꺼려졌다. 밤마다 겁에 질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바람에 수면부족으로 헛것을 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아마 무엇이 두려운지조차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정체를 알 수없는 초조함 속에서 나는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이 생겼다. 한 번에 한 올씩, 굵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교실 책상 밑과 침대 옆에 수북이 쌓여갔다. 어린 시절 자주 꾸었던 꿈이 있다. 언제부터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1979년 여름, 뉴욕 그리고 영스타운

1979년 여름, 내가 만 여섯살, 내 동생이 만 네 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뉴욕으로 떠났다. 증가하는 인구 탓에 수십 년 동안 의료난을 겪던 미의회는 고숙련 전문직을 우대하는 이민법을 통과시켰고, 그 이민ㅇ법의 혜택으로 1970년대 초반 미국에 건너온 한국 이민ㅇ자들의 약 3분의 1이 의사였다. 아버지의 의대 동안 약 절반이 이민의물결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덕분에 아버지 동창회는 가끔 서울이 아닌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에서 열리곤 한다. 고향을 떠나기로 한 부모님의 대담함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한국에서 쌓은 지위도 버리고 뉴욕의 브루클린 쥬이시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는 영어도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당시의 한국인 이민현상을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이주의 연장이..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어린시절 (1)

" 아마도, 우리의 유년 시절에서 가장 충실하게 산 날은 우리가 쓸데없이 소일했다고 믿는 그런 날일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낸 그런 날." - 마르셀 프루스트 - / 어린 시절 / 우리 부모님은 이북 출신이다. 부모님이 어릴 때 한국 전쟁이 터졌고, 평양에서 살던 친가와 개성과 원사넹 뿌리를 두었던 외간느 각자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향했다. 1951년 1월 어머니는 두 살, 아버지는 세 사링었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태어났고, 어미는 태어나기 전에 손위 오라버니 둘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장녀가 되었다. 죽은 오라비의 유지를 이으라는 뜻이었는지, 증조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성남'이라는 남자 이름을 지어 주었다. 친가는 지주였다. 친가는 1948년 북한에 세워진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했다. 그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