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책읽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4)

'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


소설과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은 바뀌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첫 번째 소설로 기억된다. 어느 추운 섣달그믐 밤의 거리, 가난한 맨발의 소녀가 허기를 참으며 성냥을 팔지만 사람들은 휙 지나쳐 갈 뿐이다. 약간의 온기를 위해서 추위에 곱은 손으로 성냥을 하나씩 하나씩 켜는 소녀는 성냥 불빛 안에서 따쓰함과 사랑이 넘치는 광경을 본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만찬, 연말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가족, 하늘 위로 흐르는 유성을 본 소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유성은 누군가가가 죽어서 천국으로 갔다는 뜻이란다." 소녀는 다시 성냥불빛에 몸을 녹이며 불빛에 비치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신을 안아 올려 하늘을 나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성냥을 꼭 움켜진 채 얼어 죽은 소녀가 거리에서 발견된다.


 이 이야기가 왜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것일까. 홀로 남겨진 할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어린 소녀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전쟁통에 할머니의 등에서 얼어죽었따는 아기 고모가 떠올라서인지도 모른다. 소녀에게는 성냥이 전부였다. 성냥을 하나 그을 때마다 소녀가 품은 소망이 하나씩, 소녀가 그리는 환상이 하나씩 불빛 속에 떠올랐다. 춥고 황량한 세상에서 외로움에 떨던 소녀를 한순간 훈산간 불빛으로 감싸준 성냥, 그런 성냥이 내게는 작은 책처럼 느껴졌다.


 책읽기는 나의 포근한 피난처가 되었따. 책에 나오는 다른 이들의 생가고가 느낌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들을 아는 것처럼, 그들이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내가 처음으로 그렇게 느낀 사람도 아니며 그렇게 느낀 마지막 사람도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나와 같은 현실의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서 나처럼 홀로 여행을 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책읽기를 향한 내 피어나는 사랑을 눈치챈 어머니는 일종의 의례를 만들었다. 매일 방과 후 나는 어머니와 함께 피자집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도로 건너편 공공도서관에 가싿. 저녁식사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어머니는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서 어머니의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내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대단한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았다. 비밀스런 일이라도 하는 양, 무언가 사악한 발굴이라도 하는 양 나는 책을 펼치고 또 펼쳐 보았다. 나느 자그마한 퀸즈 도서관에 존재하는 지식을 마구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었따.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농밀한 기쁨을 부모의 허락 하에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책읽기에 중독된 나는 매해 여름마다 도서고나에서 한 더미씩 책을 대출하여 무아지경으로 읽어댔다. 하도 빨리 읽어치워 이틀이 멀다하고 새책을 빌려와야 햇다. 이를 닦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는 마지못해 덮었떤 소설책을 다시 펼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갖독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열렬하게 책을 읽고 싶어 침대 밑에 스탠드 램프를 숨겨 놓았다. 롤러스케이트 사고로 팔을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에게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한 적도 있다. 가만히 앉아 내 얼굴 앞에 책을 펼쳐 들고 페이지를 넘겨 달라고 한 것이다. 독감에 걸려 아픈 것도 정말 좋았다. 침대에서 책을 읽을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먹으라고 어머니가 죽을 따뜻하게 쑤어주기도 했다. 주말에는 으스스하게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를 들은 오늘도, 나는 비밀스레 소망한다. 침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 웅크린 채 숙제가 없는 아이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 시는 미국 시인 우러리스 스티븐스가 쓴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고요하네]엿따. 변호사 교육을 받고 코네티컷 주의 한 보험회사에서 평생 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의 시는, 내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는지에 대해 그 어떤 글보다도 잘 묘사하고 있다.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교요하네

읽는 자는 책이 되고 여름 밤은


의식이 살아난 책과 같다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고요하네


말은 풀려 나온다. 마치 책이 존재하지 않는 듯

읽는 자가 책장 위로 몸을 기대는 것만 제외하고는


기대고 싶고, 가장 디고 싶은 것은

책과 한 몸을 이루는 지식의 탐구자, 그런 그에게


열므밤은 완전한 생각과 같다.

집이 조용한 것은 그래야 하기 때문


고요함은 의미의 일부, 정신의 일부

책장을 향하는 완벽한 접근


그리고 세상은 고요하네, 고요한 세상의 진실,

그 안에 다른 의미는 없다. 그 진실은


조용하다. 그것은 열므과 밤, 그것은

거기서 늦게까지 몸을 기대고 책을 읽는 그 사람


 책을 다 읽으면 그 상실감에 심장이 내려앉다가도, 곧 다른 읽을 책이 똥 ㄹ쏙 또 있고 끝없이 있따는 사실이 바로 떠올랏따. 책을 다 ㅇ읽어 더이상 읽을 책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초조해졌다. 한 사람이 도서관에서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의 수는 제한 되어 있었다. 때때로 나느 낸몫보다 한 두권 더 가져가고 싶어 옷속에 책을 숨기기도 했다.


나는 일지에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을 적고 소설의 플롯과 등장인물,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포함한 짤막한 감상을 덧붙이곤 했다. 잠시지만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내 허락없이 일지를 읽은 부모님이 당신들을 향한 비판과 불평을 보고 화를 낸 후로는 책읽기에만 집중하고 일지를 쓰는 것은 그만 두었다.


 우리 집엔 책이 없었따. 우리 가족에게 책이란,ㄹ 빌려 읽고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이가 좀 더 들었을때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룻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책자엥 상상 이상으로 풍부한 신비의 섹몌가 빼곡히 들어찬 집이 있따는 것, 그런 집에서 자란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ㄴ올라운 사실, 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집에 잇는 책을 보면 그 책의 주인에 대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책을 해지도록 여러 번 읽었는지, 또 어떤 책은 건드리지도 안항ㅆ늕디를 보면 그의 내면세계와 포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집'이라는 개념에 나느 압도되엇따. "책이 엄청 많아~!"

이런 집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덮치는 아찔한 열망에 순간 흠칫 놀라나는 중얼거렸따. 내 숨을 헐떡이게 한 그 집에 사는 친구는ㅇ, 감탄하는 내 못브이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데이지 같았다고 햇다. 강 건너 개츠비의 저택을 처음으로 방문한 데이지가 개츠비가 소유한 영국제 셔츠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은 처음보았따며 가볍게 탄성을 내지르는 장면을 떠올린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자주 싸웠다. 내가 안녕힞 ㅜ무셨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식사도 거른 채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책만 읽고싶어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책만 파는 사람이 되기를 우너하지 않았따. 어머니는 딸들이 '다재다능'하기를 원했다.


 나는 제인 오스틴 소설의 광적인 팬이었다. 특히 [오만과 편견]은 읽고 또 읽을 정도로 사랑했다.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한 까다로운 등장인물에 의하면, 그 시대의 젊은 여성이 교양 있는 훌륭한 숙녀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연주 및 노래 솜씨를 갖추고, 그림을 잘 그리며 춤도 잘 추고 현대 언어들도 잘 구사해야'했다. 남자주인공인 다아사니는'이런 능력에 더해 숙녀는 광범위한 독서를 함으로써 지성을 갖춰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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