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

  "그럼 죄송합니다만, 부인, 한 번 더 아드님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와주시겠어요? 예, 좋아요, 걸어오세요!"


마ㅓ사미가 한 손을 들자 어색한 표정의 미치코가 어린이집 앞에서 아키히토의손을 잡고 뻣뻣하게 걸음을 뗐다.


"편안하게, 편안하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아요."


 옆에서 보던 아카시는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의식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물론 마사미도 미치코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전부터 몇 번이나 집을 찾아와 미치코와 아키히토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실제로 카메라가 자기를 찍고 잇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긴장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야외 촬영, 거기다 어린이집의 다른 어머니들이 멀찍이서 훔쳐보고 있는 게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미치코를 긴장하게 만드는 듯 했다.


"좋아요. 오케이입니다."


 마사미가 밝은 목소리고 손을 흔들었다.


미치코가 한숨 놓인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아키히토. 협력 감사해요."


 아카시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키히토를 안아 올렸다.


"협력, 감사, 감사."

아키히토는 단어의 발음이 재미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따라했다.


마사미는 촬영용 디지털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카시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연습 장면을 조금 더 찍고, 콩쿠르 당일 대기실만 찍으면 돼."


 "알았어."


"어때, 연습 시간은 좀 확보했어?"


 파인더 너머로 볼 때는 당찬 방송기자지만 카메라만 없으면 마사미는 금세 고등학교 시절의 동급생으로 돌아간다.


"음, 일도 바빠서, 솔직히 어디 틀어박혀서 곡을 제대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


 아카시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마사미는 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왠지 그런 점이 다카시마답네."


"어떤 면을 말하는 거야?"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차분한 면 말이야."


"아야야야."


"왜 그래?"


"그게 음악가로서의 내 콤플렉스인데."


"그래?"


"그래."


 마사미가 그것을 아카시의 미덕으로 생각해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강렬한 자아와 개성이 요구되는 솔리스트의 세계에서 그런 성격이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아카시가 잘 알고 있었다.


"난 다카시마 네 피아노 좋아하는데,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마음이 편해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섬세함이 있거든."


" 섬세함이라."


 아카시는 중얼거렸다.


마사미는 어딘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 촬영은 잘 돼가?"


아카시는 일부러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


마사미는 안도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들 협조적이야. 요시가에에서 홈스테이 할 예정인 우크라이나하고 러시아 참가자를 찍게 됐어. 그 홈스테이 가정 말인데, 어쩐 일인지 항상 재미있는 아이들이 찾아오는 데다 그 아이들이 반드시 입상한다는 특징이 잇는 집이거든. 이번에 올 우크라이나 참석자도 하마평을 보니 제법 실력 있는 아이라나 봐."


 "흠."


제법 실력 있는 아이라. 당연하다.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 클래식계가 보낸 참가자니 누구나 '상당한 실력'을 가진 천재 소년 소녀들일 것이다.


 아카시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카시마 아카시, 스물여덟 살. 아버지가 일하던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얻은 이름이다.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출전자 중에서는 최공령자로 응모 규정을 간신히 통과하는 나이다. 연령층이 낮은 게 당연한 피아노 콩쿠르에서 스물여덟이면 완전히 노인네 취급이다.


  콩쿠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으니 촬영을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아카시는 그 담당자가 고등학교 때 동급생 니시나 마사미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획을 한 것도그녀로, 아카시가 출전한다는 것을 알고 아카시를 담당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요시가에는 일본 유수의 기업이 모여 있는 도시다.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는 대규모 협찬 기업이 여럿 붙어 있어 예산을 따내기 쉽다는 것도 이 기획이 통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에 아카시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가다니 말도 안 된다고 거절했다.


  "난 2차에 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


이 나이에, 직장인인 데다가 아이까지 있다. 솔직히 콩쿠르에 나갈 처지가 아니다. '망신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정도다.


 "아니, 그래도 괜찮아."


마사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음악에 원하는 건 드라마야, 다카시마처럼 가족이 있는 사람이 콩쿠르에 나간다는 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야."


마사미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유복한 가정의 귀한 자제들이면 방송에 재미가 없다는 이유도 있는 듯 했다. 아카시처럼 특이한 소재가 있어야 재미있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ㅏㄷ.


 확실히 아카시는 지극히 평균적인 회사원 가정에서 자랐다. 소꿉친구였던 아내는 고등학교 물리 교사, 아카시 본인은 대형 악기점 점원, 2대에 걸친 완벽한 일반 가정이다.



 평범한 아버지가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다! 그것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압력과 세태가 강해지고 잇는 일본에서 일종의 포인트가 되는 듯 했다.


 그럼에도 결국 티브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이것이 기념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콩쿠르 출전이 음악가로서 거의 마지막 경력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 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로 남은 음악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키히토가 어른이 되었을 때를 위해, 아버지가 '진심으로' 음악가를 꿈꾸었다는 증거를 나믹고 싶었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미치코나 마사미, 부모님께도 그렇게 설명했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카시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이 중얼 거렸다.


그건 핑계다.


또 다른 자아가 그렇게 지적했다.


너는 분노하고 있다. 의문을 품고 있다.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너, 섬세하고 다정한 너, 그런 네가 마음 속으로 눌러 담고 있던 분노와 의문, 그것을 이 콩쿠르에서 쏟아내고 싶었던 것 아닌가?


 그렇다. 아카시는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었다. 고고한 음악가마닝 롷은가? 오로지 음악을 위해서 사는 사람만이 존경받아야 하는가?


 보통 사람의 음악은 음악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보다 열등한 걸까?


약간 뻑뻑한 육중한 문을 천천히 열자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봉당 위에 비친 빛의 사각형 안에 아카시의 머리 그림자가 쏙 드리웠다.


 그리운 냄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아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작은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미 아득히 먼 엣날 일인데도 냄새를 타고 되살아나는 유년시절은 선명했다.


"와, 천장 높은 것 좀 봐. 대들보도 굵고, 옛날 집은 참 튼튼해."


마사미의 목소리에 아카시는 현실로 돌아왔다.


마사미는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불은 켰지만 눈은 아직 어둠이 낯설다.


"로프트가 있어?"


 "응, 뭐, 그녕 시렁이야."


"아, 이게 그거구나."


마사미가 카메라를 들고 차옥 안을 천천히 찍었다.

텅 빈 방, 공기는 생각보다 건조했다.


덮개를 씌워놓은 자그마한 그랜드피아노.



 마사미는 피아노에 카메라를 갖다 대고 한참동안 차분히 찍었다.


피아노를 사주신 할머니는 아카시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카시는 창고 구석에 놓아둔 등받이 없는 작은 나무 의자에 시선을 던졌다. 할머니는 언제나 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손자의 피아노 연주를 듣곤 하셨다.


아카시가 내는 소리는 다정하구나, 누에님도 네 피아노 소리가 좋은가 보다.


 "묘하게 잘 어울리네. 창고 안에 그랜드피아노라니."


"뭐, 창고 자체가 방음실이기도 하고."

"자주 와?"


"이번에는 오랜만이야."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조율을 의뢰하고 있지만 이번 콩쿠르 참가를 결심했을 때 다시 한 번 꼼꼼한 조율을 부탁했다.


아카시가 아버지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이인 조율사 하낟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이번에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할 거라는 결심을 털어놓자 아카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몹시 기뻐하며 정성껏 조율해주었다.


 기뻐, 정말 기쁘네. 나는 오래전부터 자네 피아노의 팬이니까.


피아노는 천재 소년 소녀들만을 위한 게 아니니까.


 물론 자기가 천재 소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나다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내심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이 나이에 무슨 기념처럼 코웈르에 참가할 정도니 그게 타당한 평가일 것이다.


 그보다 하나다도 아카시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걸 알고 용기를 얻었다.


 피아논느 천재 소년 소녀들만을 위한 게 아닌이까.


 "이게 너희 할머님이 사주ㅅ니 피아노지? 왠지 귀여운 피아노네. 그림이 좋은데. 다카시마, 연주 좀 해봐."


 마사미는 영상을 다루는 사람답게 방송에 나왔을 때 그림이 될지 안 될지를 게속 확인했다.


 아카시는 덮개를 덕더앤고 뚜껑을 연 다음, 의자를 빼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오랫동안 앉았던 의자다. 언제나 아카시의 무게를 받쳐주었던 쿠션 부분이 아카시의 엉덩이 모양 그대로 눌려 있었다. 거대한 콘서트용 그랜드피아노에 비하면 무척 아담한 그랜드피아노다. 체격도 크고 다부진 지금의 아카시에게는 작아 보였다.


 옛날엔 그렇게나 커 보였는데,


 아카시는 조금 누렇게 변한 건반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이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앜사ㅣ의 피아노 발표회에 온 할머니는 손자의 연주에 감격해서 "이 아이는 장차 음악가가 될 거라오"하고 이웃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어디서 누군가에게 "프로가 되려면 업라이트피아노로는 안 돼"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아카시는 어렸을 때 손도 크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도 수월하게 연주해 '미래의 큰 인물'로 주위의 기대를 받았다.


 친가는 동네 최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커다란 양잠 농가였지만 아카시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사양산업이라, 뒤를 이은 큰 아버지도 전기 제품 회사에 취직해겸업을 햇다. 그래도 할머니는 어렵게 번 돈을 저축해 중고이기는 했지만 아카시에게 이 피아노를 사주었다.


 아카시는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기뻐서 울었던 건 그때가 청므이엇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역시 그랜드 피아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모처럼 사준 그랜드 피아노는 아카시의 집에 오지 못했다.


 아버지의 전근도 잦았던 데다, 일본의 일반 아파트에는 도저히 들여놓을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들어간다고 해도 연주하면 이웃에서 불평을 듣는다. 아카시는 아버지에게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는 말을 듣고서 이번에는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여름바앟ㄱ이나 정월, 발표회 전이면 항상 이곳에 와서 하루 종일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물론 할머니느 ㄴ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없어싿.


 하지만 원래 귀가 밝은 사람이었는지, 몇 년이나 손자의 피아노를 듣는 사이 귀가 트였던 모양니앋.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은 할머니의 예리한 청각에 종종 놀라곤 했다.


 일단 아카시의 커디션이나 기분을 세세하게 구분할 줄알았다. 연습을 마치고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면 "피곤한가 보구나"라거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하고 묻는다. 그게 백발백중이라 한번은 "아카시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소리가 발라지는 구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레슨 때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충분히 '여유'를 두고 연주할 수가 없어 상태가 좋을 때에 비해 연주 시간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고선생님께 몇 차례나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들으면 눈치 못챌 만큼 짧은 시간인데, 할머니는 그 차이를 알아 차렷던 것이다.


그 밖에도 피아노를 배우느 닝웃의 아이가 가끔 놀러 와 교대로 연주하고 있으면 할머니는 누가 연주했는지, 그 아이가 어떤 성격인지 실로 정확하게 알아맞히곤 했다.


아카시의 음악관이나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반발심은 할머니의 존재로 인한 영향일지도 모른다.


 저 녀석, 피아노 안에 벌레를 키운다나 봐.


애벌레가 득실거리는 방에서 연습한다며? 소름 끼쳐.

'

 양잠실을 개조한 창고라고 햇더니 어느새 피아노 학원에 그런 소문이 퍼져 계속 놀림을 받았다. 거기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남자아이가 하나 잇었는데, 아카시와는 다른 음대에 갔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아카시의 학교 치눅들에게 그 이야기를 놀림감처럼 떠들어대서 참 난감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는 그 피아노 학원에서 아카시에 이어 항상 2드잉었는데 (그때까지 몇 명이나 프로를 배출한 제법 유명한 피아노 학원이었다.) 성격이 온화해 인기가 많았던 아카시를 시샘했던 거겠지만, 너무 끈질기다 보니 결국에는 너털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대학 친구들 중에 굉장히 유명한 돜뇨의 사립 여고를 졸업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로부터 그 학교 학생들의 부모 직업 중에 아버지가 의사, 어머니가 피아노 교사인 조합이 가장장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탁월한 천재 소년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장래를 촉망받아 음대까지 진학한 아카시는 그 업계와 주변의 일부 사람들이 가진 일그러진 선민 의식에 위화감을 품어왔다.


생활 속에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뛰어난 귀를 가진 사람은 할머니처럼 평범한 곳에 있다. 연주자 또한 평범ㄴ한 곳에 인ㅆ어도 되지 않을까?


프로도 나갈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실 프로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본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였다. 피아노도 음악도 사랑했지만 아카시는 넓은 듯 하면서도 좁은 '평범하지 않은' 그 세계에서 살아야 하낟는 게 내심 두려웠다. '평범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할머니 같은 사람이 사는 세계에 속하고 싶었던 것ㅇ니다.


" 이 곡 나도 알아. 제목이 뭐지? "


" 슈만의 곡이야. 트로이메라이."


느긋하게곡을 연주하면서 아카시는 마사미에게 대답했다.


"이것도 알지?"


다른 곡을 연주 했다.


"앗! 위장약 광고에 나오는 곡이다."


"쇼팽이야"


"역시 다카시마가 연주하는 소리는 다정해."


아카시는 이유도 없이 움찔했다.


누에님도 아카시 네 피아노 연주는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구나.


 마치 할머니가 마사미의 몸을 빌려 아카시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몸속에서 뭔가 뜨거운 감정이 진득하게 흘러나왓다.


"나, 여기에 틀어박혀서 콩쿠르 준비를 마무리할게."

"어? 나스 고원이랬나, 어디에 스튜디오를 빌린다고 하지 않았어?"


"그만두랠, 역시 여기가 좋아."


"그래?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가까워서 좋긴 한데."


 마사미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햇다.


바로 몇 시간전까지 집중해서 연습할 곳이 없네, 시간이 없네 하고 그녀에게 투덜 거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카시는 어쩐지 마음이 후련했다.


여기서 마무리를 하자. 할머니가 사주신 피아노로, 할머니가 듣고 계신, 누에님의 방을 개조한 이곳에서 콩쿠르 곡을 마무리 짓자. 지금의 내게는 그게 가장 잘 어울린다.


  "<일요일은 참으세요>라는 영화 알아?"


아카시는 건반의 감촉을 느긋하게 확인하면서 마사미의 얼굴을 보았다.


 "무어ㅑ, 갑자기, 알지, 멜리나 메르쿠리가 나온 영화잖아."


 영화라면 자신 있는 분야라는 듯이 마사미가 입을 비죽거렸다.


"거기서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


"뭔데? 아마 기억은 못 하겠지만."


 양잠실의 모차르트.


아카시는 왠지 행복했다.


"그거, 무대가 그리스잖아. 멜리나 메르쿠리가 연기하는 발랄한 매춘부가 주인공인데, 어디서 고리타분한 대학 교수가 찾아와서 번번이 명랑한 동네 주민들하고 맟라을 일으켜, 그러다 동네 음악가들에게 악보도 못 읽고, 클래식 음악도 하나 모르는 너희 같은 사람들은 음아가가 아니라고 시비를 걸어, 늘 명령한 음악가들도 충격을 받아 더는 연주하지 않겠다, 우리는 연주할 자격이 없다 하고 실의에 빠지거든."


"흠, 글머 장면이 있었나?"


"응, 나도 명색이음악가니까 굉장히 인상에 깊이 남았어."


"그래서?"

"그래서 그 애기를 들은 메리나 메르쿠리가 음악가들에게 말하는 거야. '말도 안 된느 소리! 새는 악보를 볼 줄 몰라도 결코 노래하길 멈추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음악가들은 눈을 빛내며 다시 광장에서 연주를 하지."


"와!"


"음악이란 분명 그런 걸 거야."


 햇살이 길어지는 오후의 창고 안, 평활오누 모차르트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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