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몰로
빗소리가 한층 거세져 에이덴 아야는 무심코 책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큼직한 창문 밖으로 보이느 ㄴ풍경은 대낮인데도 캄캄했고, 거친 비가뒤편의 잡목림으로부터 색채를 앗아 가고 있었다.
역시나 들린다. 비의 말馬들.
그것은 어렸으 ㄹ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리듬이었다.과거에 아야가 "비의 말이 달려와"라고 해도 어른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이라면 말로 제대로 설명할 수 이ㅏㅆ다.
집 뒤편에 함석지붕을얹은 창고가 있다.
평범하게 비가 내릴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 시간에 수십 밀리리터에 달하는 폭우가 내릴 때는 신비한음악이 들려온다.
아마도 빗줄기가 거세서 본채 지붕에서 함석지붕 위로 빗물이 튀는 것이리라. 그러면 함석지붕 위에서 비가 독특한 리듬을 새긴다.
갤럽 리듬이다.
어렸을 때 갤럽 리듬을 차용한 <귀부인의 승마>라는 곡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마치 함석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밴드 연습 중에 우연히 연습실 건물에서 울린 화재경보기가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아 그 경보음에 맞춰 즉흥으로 연주한 영상이 화제가 되었었지.
아야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은 이토록 음악으로 가득한데, 색채가 없는, 비로 일그러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런 냉소적인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굳이 내가 음악을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아야는 테이블 위의 서류를 힐끗 보았다.
소진 증후군, 스무 살이 넘으면 일반인.
그런 험담은 질리도록 들었다.
매년 세계 각지에서 천재 소년 소녀 피아니스트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바로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하고, 신동으로 칭송받고, 부모는 아들딸의 장래에 장밋빛 꿈을꾼다.
하지만 모두가 그대로 대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를 맞이해 자기가 사는 세계의 이질적인 면을 깯다고 괴로워하며,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청춘을 보내고 싶어 자연히 모습을 감추거나, 아니면 단순히 레슨에 질렸거나, 음악성에 발전이 없어 사라져버리는 이들 또한 많다.
아야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국내외 주니어 콩쿠르를 제패하고 , 음반 데뷔도 했고, 그 음반이 유서 깊은 상을 받아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아야의 경우 경력이 단절된 이유는 명백했다.
그녀의 첫 번째 스승이자, 그녀를 지키고, 격려하고, 생활 전반을 돌봐주었던 어머니가 열세 살때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ek.
아야의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열넷, 열 다섯 살 때였다면, 사춘기의 반항인아 부모의 보호하에 있는 갑갑함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머니의 죽음은 아야의음악에 다른 으미ㅣ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려고, 어머니를 위해 피아놀르 연주했던 아야에게 그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상실감은 너무나도 컸다. 그녀는 말 그대로 피아노를 연주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어머니는 지도자나 매니저로서도 우수했다.
원래 아야는 느긋한 성격이라 매사에 욕심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군중 속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라, 남들이 경쟁심이나 질투심을 드러내면 그것마느로 위축된은 나약한 면도 있다. 그 점을 아는 어머니는 그녀를 보호하고, 천성이 느긋한 딸의 의욕을 원만히 향상시킬 수 있도록 때로는 스승으로서, 때로는 유능한 매니저로서 아야를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나간 콘서트에서 아야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슼네줄은 1년 반이나 차 있었다. 그녀의 데뷔 시디를 만든 음반사 직원이 급히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부터 함께 사는 할머니가 집안일을 도 맡아 해주었기 때문에 당장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아야 스스로도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야는 지방 콘서트홀 대기실에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했다.
새 매니저는 세심하게 스타일리스트를 붙여주었다.
무대의상을 챙기고, 머리를 땋아주고, 옅게 화장을 해주었다. 지금껏 그것은 어머니가 해주었던 일이었다. 스타일리스트는 준비가 끝나자 다음 일을 하러 대기실을 나갔다.
엄마, 홍차는?
그렇게 말하려던 아야는 대기실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진하고 달콤한 홍차를, 체온에 맞춰 보온병에 넣어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곁에 없었다.
아야는 동요했다.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거대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정말로 천장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 저 멀리, 자꾸만 멀어져가는 천장,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그 느낌은 미지근하면서도 간질간질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나는 혼자다. 외톨이다.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시는 내게 홍차를 건네주지 않는다.
그걸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어서 흠칫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하얀 벽, 벽 위의 둥근 시계, 대기실, 대기실이다. 어딘지 모를 홀의 대기실.
그리고 홀연, 자신이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아까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하지 않았던가. 프로코피예프 2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휘자가,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행이야, 걱정했는데, 혼자서도 의젓하네.
대단해, 좀 더 충격을 받았을 줄 알았는데 차분하더군.
역시 연주로 극복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심자잉 서늘해졌다. 무서운 현실이 다시 그녀를 덮쳤다. 그랬다.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없다. 그래서 다들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외톨이, 외톨이.
무대 매니저가 불러 지휘자와 함께 무대로 나가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는 그 말이 끊임없이 메아치리고 있엇다.
환한 무대 저편에서 기댕에 찬 갈채가 쏟아졌을 때도 아야의 마음은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조용히 빛을 받고 있는 그랜드피아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해했다.
객서겡도, 무대 뒤에도, 세상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다.
그 사실을 똑똑하게 인식한 그녀에게그랜드 피아노는 마치 비석처럼 보였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무대 위의 그랜드 피아노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이제부터 흘러넘칠 음악을 속에 가득 담고 그녈르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빨리 저기 앉아서 음악을 꺼내야 해.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할 정도로 아야는 그 상자 속에 담긴 음악을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생생한 음악을 꺼내는 걸 누구보다도 기뻐해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휑하고 공허한 묘비, 쥐 죽은 듯 고요하게, 침묵과 정적에 오듯이 몸을 맡기고 있는 검은 상자.
저기에는 이미 음악이 없다. 나의 음악은 사라졌다.
차가운 확신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마음 속에 툭 떨어진 순간, 그녀는 홱 발길을 돌렸다.
깜짝 놀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무대 매니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야는 한 번도 ㄷ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급기야는 달음박질하다시피 무대에서 내려갔다.
객석의 동요도 사람들의 비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인적 없는 홀 뒷문을 밀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바깥으로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이리하여 그녀는 '사라진 천재 소녀'가 되었다.
내팽개친 무대는 일종의 전설이 되었다. 단원들이 리허설은 완벽했고 오히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보다도 훌륭햇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솔리스트가 사라진 무대의 수습, 위약금의 발생, 음반사 매니저가 뒤집어쓴 비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번 무대에 나타나지 않은 피아니스트에게는 두 번 다시 콘서트 의뢰가 오지 않는다. 젊은 천재 '피아니스트'는 얼마든ㅇ지 있으므로
한때는 에이덴하다. 에이단 아야. 라는 말이 피아노과 학생들사이엥서 야유의의미로 사용되었다. 갑작스러운 파기를 비꼬은 마링어싿. '에이덴'이라는 독특한 성도 야유의 대상이 되었다. '영광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영광을 차단한 피아니스트'라는 의미의 '에이단'이라 비웃음을 샀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아야는 좌절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볼 때 콘서트 파기는 정당했기 때문이다.
꺼내야 할 음악이 피아노 속에 없는데, 어째서 무대에 서야 한단 말인가?
주목을 받거나 질투를 살 바에야 바보 취급을 받거나 무시당하는 게 훨씬 나았다.
과거에는 이런저런 사심을 가진 주변 살마들이 '천재 소녀 에이덴 아야'로부터 많은 것들을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콘서트 파기 이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다가 이윽고 썰물이 빠지듯 차례로 모습을 감추어싿.
주위가 조용해지자 아야는 오히려 후련했다.
어머니의 부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그녀는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햇다. 고등학교는 일반 학과로 들어갔다. 피아노를 하는 아이, 그것도 실력이 뛰어난 아이는 대체로 성적이 좋다.
그녀도 성적은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고향의 인문계 학교에 들어가 '평범한'고등하굑 생활을 만끽했다.
음악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무대 콘서트 피아노 안에서 꺼내야 할 음악을 찾을 수 없고, 그 음악을 들려줄 어머니가 안계신 것뿐이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했고 피아노도 어느 정도는 연주했다.
아야는 사실 피아노가 필요 없었다.
어렸을 적 함석지붕을 때린은 빗소리에서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었고, 그것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어머니에게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기술적 재능도 뛰어났기 때문에 피아노를 통해 음악을 표현했을 뿐 다른 수단을 썼어도 상관없었고, 스스로 연주하지 않아도 세상에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야는 실로 천재 소녀였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그녀를 올바르게 관리하고 피아노에 흥미를 일힞 않도록 지도해야만 했다.
지도자를 잃은 것이 아야에게 다행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이제 와서는 알 길이 없다.
생전에 어머니가 딸의 음악성에 대한 우려를 텅렁놓고, 그 격정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인물이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아야가 슬슬 대학 진학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과거에 어머니와 음대 동기였다는 그도 기일이 가까우니 어머니가 좋아했던 아야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줄 수 없겠냐고 청했다.
아야는 걸음을 돌려 무대를 떠난 날 이후로 누군가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적이 없엇다. 친구와 함께 록 밴드나 퓨전 밴드에 들어가 전자피아노를 연주한 적은 있지만 다른 사람앞에서 제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상황은 피해왓따. 물론 주변에서 조심스러워한 것도 있다.
평소 같으믄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마자키라는 근 남자를 본 순간, 아얀은 이유를 알 수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너구리 동상처럼 땅딸막한 체형, 한물간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교장 선생님처럼 생긴, 안경 속의 가늘고 온화한 눈.
무엇보다 말투가 느긋해서 마치 심부름값을 줄 테니 저 모퉁이 가게에서 아이슼릠 하나만 사 오렴. 하는 것처럼 태평한 부탁에 아야는 흠, 좋아요. 무슨 곡이 좋은데요? 하고 이 역시 가볍게 받아들였다.
아무 곡이나 괜찮으니 아얀가 좋아하는 곡으로, 어머니가 좋아했던 곡도 괜찮고.
아야는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하면서 생각햇다.
요즘 좋아하는 곡이라도 괜찮으세요?
물론, 하마자키는 고개를 끄덕엿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들 앞에서 연주를 하지 않게 된 후로 피아노 방의 분위기도 싹 바뀌었다.
시디나 책, 인형에 관엽식물, 이제는 완전히 아야의 두 번째 방이었다.
하마자키는 그 방을 유심히 바랍조았다.
죄송해요. 지저분해서.
하마자키가 실망했을 까봐 아야는 황급히 사과했지만 하마자키는 "아니야, 피아노하고 아야가 한 덩어리로 어우러진 좋은 방이구나"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덩어리. 확실히 그러네요. 하고 아야는 웃으며 피아노덮개를 달칵 열었다.
아주 조금, 가슴이 설렜다. 잊고 있던 감각.
누군가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악보도 보지 않고 바로 치기 시작햇다.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러시아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재미있어 보여 마음에 들어 취미로 연습한 곡이었다.
악보는 너무 비싸서 여러 번 듣고 귀로 익혀 건반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하마자키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야의 연주가 이어지자 차츰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안색이 점점 변햇다.
아야가 연주를 마치자 하마자키는 진지한 얼굴로 큰 박수를 쳤다.
이거, 다른 선생님께 들려드린 적 있니?
아뇨, 지금은 아무도 사사하지 않아서.
아야는 쓴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저명한 선생님 밑에서 배웠지만 그 선생님도 콘서트 파기 소동 이후로 지도에 문제가 잇었다고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웠는지, 아니면 이런 문제아하고 자기는 아무 상관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는지 연락을 뚝 끊었다.
독학으로, 이렇게나.
하마자키는 순간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굉장히 훌륭했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연주했니?
하마자키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진지한 눈으로 아야를 바라보았다.
수박이 굴러가는 장면요, 아야는 대답했다.
수박ㅁ?
하마자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얀느 설명했다.
최근에 본 한국 영화에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산길에서 수박이 잔뜩 굴러 떨어져요. 깨지기도 하고, 안 깨지기도 하고, 아스팔트 도로가 새빨갛게 물드는데 그래도 깨지지 않은 수박이 한없이 데굴데굴 굴러가거든요.이 곡을 들었을 때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어때요, 이 곡,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는 수박 같지 않나요?
이따금, 한두 군데 수박을 따라잡아서 붙잡는 장면이 있죠? 나중에는 깨진 수박을 치우는 장면도 있어요.
하마자키는 눈을 껌벅거리다가 몸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수박이었구나.
이윽고 발작적인 웃음이 멎자 하마지키는 의자에 고쳐앉았다.
에이덴 아야 양, 부디 우리 대학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격식 차린 말투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하마자키를 보고 아야는 어리둥절 했다.
우리 대학이라니.....?
쭈뼛쭈뼛 묻자 하마자키는 명함을 꺼냈다.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고 놀랐다. 하마자키는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 사립 음대의 학장이었던 것이다.
에이덴 양, 음악을 좋아하지요? 음악을 몹시 좋아하고, 이해도 깊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우리 대학에 들어오길 바랍니다. 지금은 음원도 많고 즐길 방법도 만지만, 역시 음악대학에서 공부하면 재미있는 일도 더 많으 ㄹ테고, 공부를 하면 음악이 더욱 재미있어질 거예요.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음악대학에서 공부하길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단숨에 쏟아내는 말에 아야는 눈만 껌뻑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마자키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고 잇었다.
어째서 시험을 치를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이공계도 괜찮은데, 하고 여러 대학 커리큘럼을 조사하고 이썽ㅆ다.
그렇지만 하마자키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것도 사실이엇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는 되지 못하더라도, 음악과 떨어져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취미 수준이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밴드 활동을 해도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입학시험 때는 시험관 자격으로 쭉 배석한 저명한 교수들을 보고 기가 죽었다. 싸늘한 시선도 느꼈지만 유일하게 태평항 얼굴로 고개ㄹ르 끄덕여주는 하마자키를 보고 안도했던 것도 어제일처럼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아야의 연주가 끝난 순간, 교수들은 일제히 하마자키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하마자키가 싱긋 웃으며 아야에게 손을 흔들엇던 것도,
나중에야 그것이 이례적인 입학시험이었다는 말을 들어싿. 현재 사사하고 있는 교수도 없는 학생에게 학장 추천으로 입학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 자체가 자칫하면 학장의 입학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이례적인 조치였다는 말도.
그녀의 이름을 들은 같은 피아노과 학생들은 처음에 "아아, 그...." 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거나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보였고, 뒤에서 험담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소탈한 아야의 성격, 동기 중에서도 확연히 월등한 실력을 직접 보고 다들 그녀를 보통의 우수한 학우로 대해주기 시작한 것은 정말 기뻐싿.
게다가 실제로 약전이나 작곡법, 역사 등을 새로 공부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하마자키의 예언대로 음악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점점 더음악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설마 이제 와서 콩쿠르라니
아야는 창을 때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깊으 ㄴ한숨을 쉬어싿.
어렸을 때 나갔던 주니어 콩쿠르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때는 콩쿠르에 참가했다기보다 발표회에 나간 기분이었다. 시니어 콩쿠르 출전은 처음이다.
스무 살이 넘으면 일반인.
누군가가 햇던 험담이 들려왔다. 그렇다, 그녀는 올봄에 스무살이 되었다. 무대에 등을 돌린 지 7년.
현재 지도 교수(상당히 재미있다고 할까, 기인에 가까운 교수지만 아야와는 묘하게 죽이 잘 맞았다.)가 추천했는데 그 배후에 학장의 의지가 있다는 것으 ㄴ안 봐도 뻔했다.
아야도 학장에게 은혜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 콩쿠르 출전을 거절하면 학장의 체면에 먹칠을 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례적인 조치로 입학을 허락받았으니 그 존재 의의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하지만 그 때 이후로 제 안에는 그런 종류의 음악이 없어요. 선생님
아야는 마음속으로 푸념했다.
그녀는 지금의 대학 생활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바깥쪽에 있는 음악을 맛보고, 그것을 추체험하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세상에 가득한 음악을 재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걸로 족했다. 이론을 배우거나 다른 학과의 연주를 듣는 것을 통해서도 음악을 깊이 파헤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쩌지, 엄마.
아야는 점점 더 거세지는 비가 물결이 되어 흘러내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책상에 책을 내려놓고, 그 위에 털썩 엎드렸다.
머릿속에 비의 말이 질주하며 내는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