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과는 아프다.

" 한기주 씨!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세요. 자존심 세우면서 사과하는 방법은 없어요."


- 드라마 "파리의 연인" 中


언젠가 별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다가 이 장면에서 속이뜨끔했다. 화해의 제때 내밀지 않고 자존심만 세우다 갈등의 앙금을 남긴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사소한 다툼으로 불편하게 지냈던 선배가 있었다. 토라지기 전에는 꽤 돈독한 사이였지만, 자존심 탓인지 먼저 잘못을 시인하려 들지 않았다. 나도, 


그 선배도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기자실에서 마주친 선배는 빨간 사과 한 알을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선배의 얼굴과 사과의 색깔이 꽤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입을 삐쭉 내밀며 잠시 사과를 바라봤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각사각 한입 베어먹었다. 상큼ㄴ한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졋다.


사과를 먹고 헤아려봤다. 선배는 왜 뜬금없이 사과를 건넨 것일까?


아차, 선배의 메시지는 단순했던 것 같다. 그는 사과(apology)를 하고 싶었던 거다. 다만, 쑥스럽다는 이유로 그냥 사과(apple)를 내밀었을 뿐.


 돌연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달 전 캡슐 커피를 구매하기 위해 집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 매장 안에서 한 아이가 우사인 볼트로 빙의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잇었다.


"다치겠네" "여기서 저러면 안 되는데"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갑자기 들이닥친 아이 때문에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자 고객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다행히 화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다움 장면이다. 아이 어머니는 '안 다쳤네?' 하는 눈빛으로 사내를 대충 흘겨보더니 사과 한 마디 없이 자리를 뜨려 했다. 사내는 영화 '벹에랑'에서 유아인이 "어이가 없네"라고 말할 때보다 더 어이가 업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요, 공공장소에선 뛰지 않게 하셔야죠!"


 소용없었다. 사내의 항의가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되레 더 큰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 뭐요? 원래 착한 아이란 말이야. 당신도 아이 낳아 봐! "


흠, 뭐라고 할까, 그녀는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는 사회적 통념을 실제로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절규에 가까운 샤우팅과 얼굴을 찌를 듯한 삿대질로 말이다.


언행일치이자 지행할 일이다.


나는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못브을 바라보며, 한때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을 연상했다.


특정 연출자가 헤드폰을 쓴 채 다른 출연자의 입 모양만 보고 단어를 알아맞히는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코너를,


사내와 아이 어머니가 충실히 재현혀나는 것처럼 보였다.


뒷 맛이 씁쓸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염치를 잃어버린 것 같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쳐 놓고 그냥 내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버스나 기차에서 1시간 가까이 목소리 데시벨을 최대치로 높여 통화하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고 할까. 염치가 사치가 됐다고 할까.


염치는 본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낮잡아 우린 '얌채'라고 부른다.


 물론 사과는 어렵다.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노래도 있다. 엝은 존이 목놓아 불렀다.


"미안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인 것 같다. (sorry seems to be the hardst word."


사과가 뭘가, 도대체 그게 뭐기에 나이가 들 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우린 왜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을 승자가 아닌 패자로 간주하는 걸까.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la'에서 유래했다.


얽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가 사과인 셈이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의 사謝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하는 의미가 있다. 과過는 지날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먹는 사과의 당도가 중요하듯, 말로 하는 사과 역시 그 순도가 중요하다.


사과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하지만'이다. '~하지만'에는 '내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책임도 있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사과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변질되고 만다.


 사과에 '하지만'이 스며드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은 증발한다.


 언젠가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을 들여다본 적있다. 그는 어딘지 힘겨워 보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일까?


엉뚱한 얘기지만 영어 단어 'sorry'의 어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 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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